나는 나르시시스트인가?

카테고리 없음 2009. 12. 21. 22:26
  일주일 전, 이별을 겪고 난 뒤에 나는 자연스레 김형경씨를 '천 개의 공감'과 '사람풍경'을 통해 다시 만났다. 
  김형경.. 나를 자기 성찰로 인도해 준 작가. 
  노란 방에서 울고있는 일곱 살 여자아이를 보게해 준 그런 사람.
 
그녀는 소설가 김형경보다 심리치유에 관한 저서와 강연으로 더욱 유명하다. 24일 목요일에 그녀가 KBS1 '아침마당'의 목요특강에서 강연한다기에 출연과 강의 내용이 기대된다. 
  두 권의  책을 읽을 때마다 느끼는 것은 마치 그녀가 나랑 절친한 언니가 되어
  "응응, 그랬었구나. 네가 얼마나 맘이 상했을지 짐작이 돼. 그런데 말이지 한 번 이런 것들을 생각해봐야할 것 같아. 내 이야기 들어볼래?" 라고 말해주는 것 같다. 
  그러니까 만인의 형경언니가 되어 담담히 독자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런데 읽던 중에 '나는 나르시시스트인가?'하는 의심이 생겼다. 
  나를 놀라게 했던 '천 개의 공감' 속의 한 문장.

  '혹시라도 세상이 나의 논리나 도덕에 맞추어주기를 바란다면 그것이 곧 병리적 나르시시즘일 것입니다.'

  이 문장은 내가 부모님의 말에 순종하지 않고 '너 잘 났다'라고 욕을 실컷 먹으면서도
나에겐 그른 것이 없다며 왜 내 맘을 그렇게도 몰라주냐며 나의 논리를 또박또박 말해가며 두 분께 대들었던 모습들을 스쳐지나가게 했다. 또한 스무 살 때, 남자친구에게 나의 애정을 가장한 잔소리들, '내가 너를 구원해줄 수 있어'와 같은 착각들, 내가 원하는 세상과 다른 세상이라며 신문을 보며 분노하던 내 모습, 여러명의 모임보다는 일대일 대화가 더 좋은 것 등등..

  오늘 나는 말로 부모님을 죽였다.
  또박또박 말대꾸하며 서럽게 울었다.
  그렇게 서럽게 '끄억끄억'거리며 눈물이 난 건, 단순히 두 분의 입장을 헤아리기 보다는 나를 몰아세우는 서운함과 나를 몰라주는 서러움 때문이었다.
  '아빠가 내 맘 알아요? 내 입장 되어봤어요? 
   아빠는 지나간 일 되짚는 거 싫어하면서, 왜 나를 지나간 일로 혼내? 
   엄마는 나의 마음 죽어도 몰라요. 그동안 내가 얼마나 많이 참고 살아왔는지.
   나 여태껏 혼자서도 잘 큰다고 칭찬했었잖아요. 그러면 끝까지 믿어주면 안돼?'
  
  책상에 엎드려 눈물을 펑펑 쏟았다. 그 후에 내 맘을 가라앉히고 '나르시시즘'에 대한 개념과 '나르시시스트'들의 특징을 검색하여 이 블로그, 저 블로그 다녔다.
  여러 글들을 읽으면서 뭐 나는 병리적인 나르시시스트는 아닌 것 같다만, 그래도 우려되는 부분들이 역시 있었다.
  그러던 중에 티스토리의 블로거의 변화들을 읽게되었다. 그 변화들은 사람들에게 신경 덜쓰기, 더욱 많아진 에너지, 잡다한 것들에 대해 줄어든 관심.

  그녀의 변화들은 내가 평소에 변화되었으면 하는 부분들이었다. 
  너무 관계에 얽매였던 나, 쫌 관계에서 자유로워졌으면 했었다.
  한가지에 집중하기 힘든 나, 신경쓰이는 게 많아서 나를 잊을 만큼 어떠한 것에 몰입했으면 했었다. 그것은 대체로 학교의 중간, 기말고사와 나의 능력을 가늠하는 사례연구 과제들이었다. 그리고 내가 했던 과제들은 스스로 완벽하다고 칭찬한다. ;ㅁ;
  호기심이 많은 나, 다양한 종류의 책들을 이 책 저 책 떠들석 거리다가 맘에 들면 완전 즐겁게 읽고, 재미없거나 별로이면 냉정하게 덮어버리는 불량 Reader이다. 
  이런 내가 변화될 수 있을까?

  나 자신을 알고 인정하는 것부터 시작이라고,
  나를 성찰하는 이 몸부림, 참 눈물겨운데 눈물 겨운 만큼 반짝반짝 빛날 수 있겠지?
  

  형경언니의 조언을 끝으로 이 쯤에서 글을 마치자. 한결 후련하네.

 '자신의 경험을 의식화하고, 문제점과 해결책을 내부에서 찾아내고, 그것을 현실에서 반복해서 실천함으로써 체화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인간은 동일시를 통해 성장한다고 몇 차례 말씀드린 바 있습니다. 타인의 선함과 지혜뿐 아니라 조직의 가치나 질서 역시 내부로 받아들여 그것을 자신의 일부로 만들면서 정신을 성숙시킵니다. 자신만이 '옳고 선하고 정당하다'는 관념에 갇혀 있으면 외부의 지혜나 새로운 가치를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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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CSE Story ..끝나지 않은 이야기

카테고리 없음 2009. 12. 12. 18:44


  2009년 12월 10일.
  2006년 3월 2일에 시작했던 나의 ECSE(Early Childhood Special Education 유아특수교육)Story의 서론이 끝났다.
  서론의 끝에는 사은회가 있었다. 교수님, 06학번과 우리와 함께 졸업하시는 선배님들이 모인 자리였다.
  신입생 OT, 고딩같았던 모습으로 만난 때가 엊그제 같은데 어느덧 우리는 다들 '여성'이 되어있었고, 헤어짐이 가까워져오니 다른 어느 때보다 즐겁고 많이 아쉬운 마음들이 눈에 보였다.
  사은회가 있기 전에 교수님 연구실 앞에 모여 모의 면접이 있었다. 취직하기에 앞서 우리들의 면접태도, 말투, 표정들을 피드백 해주시려는 꼼꼼하신 교수님, 특히 최민숙 교수님께 다시 한 번 진심어린 감사의 마음이... 
 

사은회 시작 전, 과제걱정 시험걱정 하나 없이 동기들과 함께 여유있게 사진찍고 놀았당♡


  친구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지난 시간들을 돌이켜보니 난 정말 바쁘게 달려왔다. 개인적으로 천안에서 자취하고 백석대의 기숙사 생활을 선택하지 않았다. 통학생의 Life는 시간이 지나면 지날 수록 나에게 빠듯한 시간관리, 여유없는 생활을 요구했다. 게다가 몸도 매우 피곤한 생활의 연속이었다. 새벽 7시에 상일동역 3번출구에서 통학버스로 등교길을 달렸고 잠실과 강남을 거쳐 귀가하는 그 길에서 음악과 책으로 심신을 달랬다. 그 길에서 나는 독서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배웠지.^-^

  1학년의 어느 날에 나는 하교하는 강남행 통학버스에 앉아,  선생님이 되고자 이 곳까지 왔는데 사고나서 변을 당하는 일이 내게 결코 있어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무심코 내 머리를 스쳤다. 그래서 단단히 안전벨트를 하며
 '하나님, 이 곳에 괜히 보내주신 것이 아니라 저는 믿습니다. 당신이 저의 안전을 지켜주시리라 저는 당연히 믿습니다.'라며 기도드린 적이 있는데 아무런 사고없이 건강한 몸으로 이제 2010년 2월, 졸업한다. 
  마지막 교수님 조언대로 나는 재학생이 아니라 현장에서 일 할 수 있는 기본적인 자격을 갖춘 '교사'인 것이다. 
  사실, 수업시간에 종종 교수님들로부터 Specialist의 마인드로 일하라라고 부끄럽지 않을만큼 공부를 열심히 하라고 가르침을 받았다. 
  'Specialist'라는 명칭은 내게 부끄러운 명칭이나 굳이 수식어를 붙이자면 '꼬맹이'Specialist라고 하고 싶다. 
  이 꼬맹이Specialist가 내년에 ECSE Story의 본론을 시작하게 될텐데, 어디서 나는 그 본론을 쓰고 있을까? 나의 동기들은 어디서 본론을 시작하게 될까?

이런 궁금증을 품었을 때, 달래선배의 교수님께 드리는 감사의 편지, 교수님의 인사 및 격려 .. 가은이가 동기들에게 보낸 편지 낭독이 있었다.
가은이의 편지는 우리 모두의 마음이 담겨있다고 나는 믿는다. 내 맘도 그러니깐..
그래, 우리 신입생 MT 때부터 04학번 선배님들한테 진짜 언니라고 말했다고 엄청 혼났었지. 그리고 선배님들에게 인사를  제대로 하지 않는다고 애정♡?이 듬뿍 담긴 이런저런 훈계와 훈련 아닌 훈련을 받던 그 장소, 본부동 지하 106호!
그 곳에서 우리는 쫄며 고개 푹 숙였었지. 아무리 친해져도 '언니'보다 '선배님'이라는 호칭이 더 편안했고, 한 울타리 안에 있음을 느끼게 해준 끈끈한 호칭이 되었지. 
가은이 인사대로 우리 동기들의 열정, 착실함, 무엇보다 아이들을 사랑하는 마음은 자랑할 만하다.
우리는 남녀공학의 대학생처럼 지난 4년을 보내지 못했고, 어쩌면 여대 아닌 여대생활.. 아니다 우린 여고생활을 했었다.
(이부분은 박현옥 교수님도 인정하셨음KKKKKK)
어쩜, 우리 동기들은 무단결석 한 번을 안할꼬 -_- ..
동기들의 착실함은 무단결석 없이 천안까지 나의 발걸음을 인도했던 마력같았던 것이었돠.ㅎㅎㅎ 그리고 동기들만의 따뜻함과 성실함은 내 안에 늘 자리잡았던 차가운 경쟁심을 녹여주었고, 오히려 협력하고 싶은 마음을 내게 심어주었지.
정말 현장에서 너희같은 동료가 있다면, 일을 할 때 힘이 날 것 같아 ^_^♡
그리고 우리를 여고생활을 하게끔 여러 과제와 시험을 친히 제공해주신 교수님.. 덕분에 많이 성장했고, 무엇보다 우리를 늘 반겨주시던 그 사랑.. 감사합니다. 





윤진아, 그동안 고생많았다!
나에게 박수를 짝짝짝!!

21살 22살 23살 24살
많은 일들 가운데 정말 많이 배웠고, 잘 견뎌냈다.
또 다른 시작을 위하여
더 기도 많이 하고
더 노력하자


하나의 길을 선택한 것을 후회하지 않을만큼
부르신 그 곳에서 더 많은 이야기를 써내려가자.


어떤 상황 가운데에서도
네 안의 푸른 꿈은 잘 간직하는 교사가 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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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야 바보

카테고리 없음 2009. 12. 7. 00:30

오늘따라 이상하게 목원들이 이런저런 이유로 예배와 목장모임에 참석하지 못하였다.
집에 돌아온 지금 나는 오늘 만나지 못한 유미, 혜리, 길중이, 동호, 진실이 얼굴이 내 눈에 어른어른 거린다.
이럴 때마다,  내가 얘네들을 많이 좋아하나봐ㅠ_ㅠ 나만 짝사랑하는 것 같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목자는 우직한 바보일 수 밖에 없나보다.
지난 시간들을 돌아보면 나도 참 목원들에게 몹쓸 가시돋힌 말을 해서 상처를 주었지만 또 나도 그들에게서 상처를 받았다.
그런데도 언제 그런 상처를 받았냐는 듯이 얼굴 보면 반갑다. ^_^ 이게 바보지 뭐냐 ㅋㅋ
그래서 나는 오늘도 집에 도착해서 그들에게 문자를 보낸다.
답문 아예 안 줄 것 같은 목원들에게도
'집안 일 뭔지는 모르겠지만 잘 풀리도록 기도할게.'
'보고싶은 누구야, 오늘 얼굴 못봐서 너무 아쉽다.'
'이번 주 어떻게 지냈어? 궁금하다^_^' 라며 안부를 묻는다.
또 각 개개인의 편치않은 사정을 들을 때마다 내 맘에선 요동이 치는지 ..

울아빠가 교회에 미쳤네, 공부 안했네, 그래서 시험 떨어졌네.. 안타까워 하셔도 이래도 뭐 나는 좋다.
내 마음이 먼저 바보가 되라고 하는 것을 어떡해!
나를 불러주신 이 곳에서 그저 그들을 위해 기대하고 기도하며 기다리는 수 밖에..
당장 새 사람이 되지 않을지라도 내게 맡기신 일은 바보처럼 그들을 바라보고 사랑하고 기도하는 것이라 조용히 말씀하신다.
우직한 바보의 모습 변치않기!

고난과 핍박과 조롱이 있을지라도, 나를 인도해주시는 그 분을 믿으며 한걸음 한걸음 또 전진하기로 약속해, 기뮨진!! kkk
오늘이 복음 앞에 서야하는 마지막 날이다!
2002년 1월, 나를 만드시고 그 때까지 나를 기다려주셨던 그 분의 사랑을 기억하며 나도 사랑하자♡
다시 십자가 앞에 정갈한 영혼으로 나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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