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 아이를 만난다는 것

카테고리 없음 2009. 9. 14. 20:53


가끔 내 감정과 행동의 근원을 알고 싶을 때가 많다.
'나는 왜 이러지?'라는 질문과 함께 시간을 달리는 소녀의 마코토처럼 과거로 돌아가고자 애쓴다.
항상 쉽게 과거를 떠올리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집중을 하다보면 과거를 떠올리게 되는데..
과거 속에서 어른 아이를 만날 때마다 불편한 마음이든다.
그건 '애'가 애답지 못하고 '어른'인 것마냥 행동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른'인 것마냥 하는 행동들을 또 어른들은 반가워하신다.
'애어른', 초등학교 때 어른들로부터 진짜 마니 듣고 살았다.
이게 좋은 줄 알고, 난 꽤 괜찮은 아이인가보다 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윤지니, 너 무지 애썼구나.'라는 마음에 뭔가 할 말을 잃는다.
나를 바라봤던 어른들의 눈빛이 기억나는데, 그 기억 역시 어른아이를 만나는 것 만큼이나 반갑지 않다.


최근에 또 외할머니가 그리워서 눈물이 글썽글썽..
가슴에 깊게 새겨진 그러한 순간이 있다. 그 순간을 떠올리며 시간을 자꾸 거슬러 올라가다보니
어른 아이를 또 만났다.
내가 왜 외할머니를 그토록 그리워하는지 알게되었다. 그렇게 또 나는 눈물이 펑펑..ㅠ_ㅠ


가슴에 깊게 새겨진 순간이라 함은 외할머니와 함께 공원에서 함께 보낸 해질 무렵의 순간이다.
몇살인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11살 때로 추측이 되는데,
가을날에 어느 누구와도 동행하지 않고, 풍납동 우리집에서 올림픽공원으로 나 혼자서 외할머니를 모시고 다녀온 것이다.
그런데 외할머니와의 동행은 엄마가 나에게 시킨 것도 아니고 할머니가 나에게 부탁하신 것도 아닌..
나의 즉흥적인 판단이었다.

외할머니는 자주 우리 집에 내려오셨다고 한다.
그리고 나는 외할머니가 무척 좋았다. 외할머니랑 있을 때 웃음이 늘 있었던 것 같다.
뭐랄까 .. 존재만으로도 든든함이랄까? 할머니의 전남 사투리가 너무나도 유쾌한? 그런거 때문에^^

외할머니가 다시 시골로 내려가신다 하시면 엄마랑 이모는 밭이 뭐가 중요하냐며 서울에 더 계시라고 하셨는데,
그 때마다 할머니 대답은 한결 같았다. '이 곳이 이제 답답하다고..'
마당이 비좁은 그 주택가가 할머니에겐 당연히 답답하셨겠지..
나는 할머니가 영광 할머니 댁으로 다시 가시는게 싫었던 것 같다.
할머니의 답답함을 해소시켜드리고 싶은 마음에 생각한 장소는 엄마랑 자주 갔었던 올림픽 공원이었다.
지금 생각해도 꽤 먼거리이고, 어렸을 때도 멀다고 느껴져서 
"할머니 공원 가실래요? 집에서 공원까지 멀텐데 괜찮아?"라고 여쭤봤더니 괜찮으시다며
할머니는 옷을 단정히 차려입으시고 나를 믿고 동행하셨다.
그런데 신기한 건 할머니와 함께 가면서 전혀 멀지 않게 느꼈다는 것이다.
또 할머니는 공원의 가을을 반가워하셨고 좋아하셨다.
그 때 할머니랑 몽촌토성에서 오래된 은행나무, 서쪽으로 기울여지는 해와 붉은 노을을 보면서 감탄했었다.
그리고 할머니의 만족하신 표정, 뒷짐지신 옆모습까지도 선명하다.
그 날 저녁에 엄마는 할머니와 함께한 외출에 놀라셨다.
할머니의 입은 귀에 걸리셨고^^
이 날 이후로 할머니와 나는 서로에게 더욱 각별해진 것 같다.
이 추억은 훗날 고1 미술시간에, 내 그림의 소재가 되기도 했다.

올림픽 공원에서 혼자 걷게 되면 꼭 몽촌토성을 간다. 그 곳에 서서 할머니를 떠올리며 주변을 살펴보게 된다.
언젠가 그 은행나무를 보며 마음이 짠했었다.
할머니와 함께 봤었던 그 은행나무의 모습은 없고, 힘이 없어서 가지를 지탱해주는 모습만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너만큼은 오래오래 푸르렀으면 좋겠는데..'

작년 여름에 나 혼자서 영광에 다녀왔었다. 외할머니 장례식 이후로 처음 내려간 나의 휴가였다.
그렇게 며칠을 쉬고 영광에서 서울로 올라오는 버스에서 30분동안 조용히 눈물을 쏟았었다.  
내 눈물의 이유는 막내이모랑 헤어지는 아쉬움도 있었으나, 가장 큰 이유는 할머니의 부재였다.
우리 막내이모를 비롯한 가족들은 각자 자신의 자리에서 열심히 살고 있지만
정작 외할머니가 계시질 않아서 가장 슬펐고, 그리움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삼촌이 할머니가 사시던 집을 개조하셔서, 예쁜 정원이 갖추어진 세콤이 관리하는 좋은 집으로 만드셨지만..
할머니랑 함께했던 여름엔 덥고, 겨울엔 포근했던 그 집이 없었다.
개떡을 만들어주셨던 그 부엌도 없었다.
올라오는 길에 어찌나 그것이 서럽던지..

공원의 은행나무와 변해버린 외가댁 때문에 속상했던 마음은
어쩌면 흘러가는 시간 앞에서 어떠한 것도 영원히 고정시킬수 없는 내 무력감 때문인 것 같았다.
외할머니가 뻐꾸기가 울던 그 봄 날, 내 생일에 이 세상을 갑자기 떠나신 것..
모시 옷을 입으신 당신을 본 것.. 하얀 가루가 된 할머니를 그 산에 뿌려드린 것..
눈이 뜨겁고 목이 메인다.

더욱 마음이 아픈 건..
초등학생이었던 내가 사랑하는 어르신을 내 옆에 두고자, 그 분의 마음을 많이 헤아린 어른 아이의 마음과 노력을
얼마전에
느꼈기 때문이다. 그리고 당신을 천국에서 볼 수 없기에.. 저는 너무 슬픕니다 ㅠㅠ
할머니 피부결도 기억하는 저는 당신이 보고싶어요, 아주 많이. 너무 그리워서 눈물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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