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 속 깊은 그 곳

카테고리 없음 2009. 10. 15. 11:29


 

                 참회록
                                               
      
                                     윤동주




파란 녹이 낀 구리 거울 속에

내 얼굴이 남아 있는 것은
어느 왕조의 유뮬이기에
이다지도 욕될까.

나는 나의 참회의 글을 한 줄에 줄이자.
ㅡ만 이십 사 년 일 개월을
무슨 기쁨을 바라 살아 왔던가.

내일이나 모레나 그 어느 즐거운 날에
나는 또 한 줄의 참회록을 써야 한다.
ㅡ그 때 그 젊은 나이에
왜 그런 부끄런 고백을 했던가.

밤이면 밤마다 나의 거울을
손바닥으로 발바닥으로 닦아 보자.

그러면 어느 운석밑으로 홀로 걸어가는
슬픈 사람의
뒷모양이
거울 속에 나타나 온다.











 

인식하지도 못했던 죄가 내재해왔다는 걸 깨달았던 그 날 이후로 자꾸만 내 마음이 편치 않았다. 
친구의 앞에서 그렇게 내 죄를 고백하던 그 날, 귀가하는 그 밤에 저 시가 문뜩 떠올랐다.
시를 검색해보니, 무릎탁!! 윤동주 시인님과 찌찌뽕이라고 해야할까 'O');


우리모두는 우리를 둘러싼 환경과 사건에 대해서
'불행한 일이 일어나는 건 그 사람 때문이야.'
'저 사람 때문에 내 맘이 심란해. 왜 내 인생에 뛰어들어서 날 힘들하는데?'와 같이
내 감정과 나를 둘러싼 사건의 원인은 그렇게 나를 둘러싼 사람을 탓하고,
하나님의 뜻을 운운하며 불평하는 마음이 가득하기 쉽상이다.
내가 많이 그래왔던 것 같다.


그러나 섬광처럼 번쩍이며 깨달음이 내 머리를 스쳤을 때, 모든 일의 원인은 너도 아닌 나도 아니다.
자꾸 내 마음을 솔직하게 역추적 하다보니 나의 죄된 본성 때문이었다.

깨닫고 난 후에 나는 얼마나도 두려워했는가?
예레미아 말씀을 읽으면서 하나님을 진노케 하는 것이 인간의 죄임을 지난 달부터 묵상했다.
그렇게 묵상했는데, 어떻게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는가?


정말 위험한 것은
머리 속에서는 천둥이 치고 폭풍이 몰아치는 두려움과 죄를 이해하는 것보다
매우 더디게 움직이 심장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진실로 찢어지는 심정으로 회개하고 있는지,
치열하게 몸부림치기 보다는 어쩔 수 없는 본성이라며 그저 그렇게 살고 싶어하는지..

어쩌면 이 곳에 끄적이며 부끄러운 고백을 하는 것이 지금으로써는 가장 최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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