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무게감이 최중도 비만에 이르렀을 때,

카테고리 없음 2009. 11. 16. 02:42
목-금-토-일..
쉬지 않고 달렸다. 마구마구 달려줬더니, 주일이 너무 피곤하다.
어쩜 그렇게 만나는 사람도 많고, 해야할 일은 끊임없는지..
글구 마주하게 되는 형제들은 어찌나 'Loser'발언을 하는지 ... '내가 너보고 키 작다 그랬니?'
첨엔 그냥 우스갯소리라 생각했는데, 만나는 사람들이 대체로 예능감이 넘치는(?) 홍대녀의 이야기를 많이 해서 짜증이 났다.
'너네도 여자 몸매보고 얼굴보잖아.-_-)+'
심지어 네이트온에 와서 까지 과제하니까 사람들과 이야기하니까, 사람들 사이에서 자꾸 부대끼는 것 같다.
내가 외향적인 사람이여서 그런것인지 모르겠지만, 사람들을 많이 마주할 당시 온갖 희노애락을 느끼고 집에 돌아오면 ....   OTL
지금 글을 쓰며 생각해보니, '나는 사람들을 마주할 때마다 그 순간순간에 최선을 다해서 그런게 아닐까'라는 추측을 하게된다.


나는 드라마 '그들이 사는 세상'을 좋아한다.
그사세를 좋아하는 이유가 첨엔 송혜교가 좋아서, 그 다음엔 드라마치고 현실적인 사랑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최근엔 '주준영'이라는 캐릭터가 나랑 비슷한 구석이 많은 것 같다.
예를 들어 일할 때 무식하게 덤비는 용감함 혹은 자신감, 버럭하는 거, 곤란한 상황이 닥쳐올 때에 얼렁뚱땅 말로 잘 넘기기,
눈물도 많고 여린 거 등등..
게다가 그사세 3회에서 내 머리를 띠용하게 만드는 준영이의 대사, 한문장이 있다.
'사랑이 귀찮아질 만큼 사는게 버겁다.'


사랑이 귀찮아질 만큼 사는게 버겁다
내가 곧 잘 느끼는 감정이다. 사는게 버거워 사랑이 귀찮을 때가 종종 있다.


'내 한 몸 챙기기도 힘들어. 도망가버리고 싶은데.

왜 저 사람이 내 앞에서 막고 서있는 걸까? 나 도망가게 거기서 비켜주면 안될까요?
난 여기서 포기하고 싶단 말이에요.'



이런 마음은 공동체 사람들 그리고 한 사람에게 외치는 나의 소리없는 아우성, ㅠ_ㅠ
이러한 마인드는 '사랑' 앞에서 미숙하고 소심한 자의 투정인 것 같긴하나, 투정 좀 부려보지 뭐.
요즘처럼 몸이 피곤한 시기.. 하루의 끝엔 오늘 하루도 무사히 마쳤다는 것에 뿌듯함 보단 '쓸쓸'하지.
오랜만에 만나는 모든 얼굴이 마냥 반갑지는 않다.
모르겠다, 이번 목자모임은 만감이 교차한다. 진짜 전/쟁/터/.
어쩜 그렇게 사람 섬기는게 목이 메이도록 비참하기도 하고, 同志의 부재함과 어려움에 어쩜 그렇게 마음이 아픈지..
가장 낮은 길, 낮은 마음..이것이 '제자의 삶'이란 말인가!
예수 그리스도, 당신의 인내심에 깊은 경외함이 생깁니다.

그리고 내가 누군가에게 지금 마음을 주기에 머뭇거려함은 오히려 그에게 상처를 줄까봐, 그렇다.
내게서 A라는 부분이 보이고 그것 때문에 마음에 들었다고 가정하자.
그러면 나의 'A'때문에 언젠가 그가 실망하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이 있는 것 같다.
쓰잘떼기 없는 불안이라 생각하고 싶지만, 어쩔 수 없다.

원래 가까워 질수록 보여주는 밑바닥 때문에 나는 두려워서 벌벌 떨고 있으니..
너를 '비호감'이라고 부를 정도의 내 인격, 이것만큼 사랑할 수 밖에 없는 내 모습이 너무 보기 싫어..
그래서 "사랑이 귀찮아질 만큼 사는게 버겁고, 외로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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後 後 後 後

카테고리 없음 2009. 11. 6. 00:43

드디어 11월 1일 시험이 끝나고, 어느새 목요일 밤이 되어버렸다.
시험 끝나면 다 끝날 줄 알았는데, 마냥 즐거울 줄 알았는데,
월요일 하루종일 실컷 놀고나니 또 현실이다.
과제-졸업고사-과제-기말고사-취업
에잇, 기대감도 없고, 심지어 보이지 않는 미래에 대한 막연함도 없는 하루..



시험 끝난 뒤에 남는 건, 약해져버린 신체와 불어난 지방, 망가진 피부랄까?
긴장감 풀린 몸은 찬바람을 강하게 이겨내지 못해 끙끙앓는 전쟁을 치른다.
얼굴은 분명 웃고 있는데, 여리디 여린 마음은 한 여름의 장마철 같이 지루하고 침침하다.
하루 통틀어 여러개의 문자를 주고받고 나면 난 뭐하고 있는건가 싶기도 하고



독서실 책상에 앉았다.
그토록 원했던 전공책이 아닌 내가 읽고 싶었던 책을 읽어서 기분이 좋을 줄 알았다.
앉았는데 내가 붙여놨던 포스트 잍s가 눈에 거슬린다.
눈물이 핑그르르르..
그 시험지를 받았을 때, 심장이 터질 것 같았던 그 시간이 떠오른다.
그 때 마치 나를 중심으로 그 교실은 내 망막에서 좌우로 흔들거리고 있었다.
뭐랄까 그것은 마치 좋아하던 친구에게서 고백받고 어지러웠었던 것보다 더 어지러웠다.
(그땐 가슴 벅차기라도 했지 -_-)
시험 볼 때 너무 긴장한 탓에 제대로 집중하지 못했던 것 같다. 그래서 나의 고질적인 실패원인을 다시 보게되니; 씁쓸..
물론.. 내가 예상한 것도 나오고 감사한 문제도 나왔었지만.. 너무 아쉬움이 크다. ㅠ_ㅠ
그래도 이왕이면 좋은 결과가 나왔으면 좋겠다고 소망해보지만 가채점 결과가 좋지 않다.


나를 둘러싼 나를 제외한 사람들은 즐겁다.

루시드 폴의 '사람들은 즐겁다'라는 노래의 이 가사가 생각난다.
내 심정을 가장 정확하게 대변해준다.
나만 심각하고 별 일 없이 사는 것 같아서 너무 괴롭다.
즐거운 일이 일어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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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Paradoxical Pleasure

카테고리 없음 2009. 10. 19. 01:01

너무 기뻐서 글을 남기고 자려고 이렇게 또 포스팅한다^^
요새들어서 내가 죽으면 다른 새생명이 살아난다는 것에 너무 기쁜 요즘이다.

내가 죽었지만 한 생명이 다시 태어난다는 것은 정말 역설적인 기쁨이다. 새로 태어난 친구 덕분에 나는 매주 역설적인 기쁨의 홍수에서 허우적거린다.


  나는 요즘 내 자신에게 칭찬하는 일이 부쩍 늘었다. 그건 바로, 내가 말씀따라 살아가고자 나름대로 몸부림쳤었던 것이다. 
  베드로에게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라며 세 번 물어보셨던 예수님.
  예수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했던 베드로에게 그 때마다 모든 '양을 치고, 먹이라'라며 명령하신 그 말씀을 가슴에 품고 있었던 것 같다.
  그 말씀대로 살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내게 실망하실까봐..kkkk
  특히 목원들을 위해서 많이 기도했었다. 목장 초기에 참 특별한 Passion을 섬긴다는 것이 너무나 힘겨웠었고 내 자존심을 포기해야할 때가 있었다. 
  그럴때마다.. 눈물 펑펑 쏟아졌었지만.. 
  지금은 목원들의 모습에 많이 웃음짓곤 한다. 나의 기쁨, Passion!

   나는 사실~ '우리 목장에 남자 보내주세요. ○○또래 보내주세요. '라며 구한 적 없었지만.. 우리 목장에 필요한 사람들을    그렇게 보내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늘 감사하다. 
  내게 주신 상황 가운데서 최선을 다하고, 말씀따라 사는 것이 가장 올바른 삶의 자세인 것을 조금씩 느낀다. 
  그래서 어떤 임용고시 시험 결과를 묵묵히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가 되어있다. 내 꿈너머 비전을 향해 함께 걸어가실 그 분을 믿기 때문에.. 오늘밤, 두려움이 없다. :-]
  다만, 남은 기간동안 집중해서 기쁘게 공부하고 싶은 마음 뿐이다.   
   
   말씀따라 살겠다는 원칙만큼 힘든 원칙이 있을까?
   원칙을 따라서 사는 삶은 참 느린 삶이지만 인내하며 묵묵히 원칙을 지키며 걸어갈 때에 삶에 참의미가 있는 것 같다.
   
   이렇게 나의 서투른 글은..
   내가 흐트러질 때마다 이 글을 읽으며 다시 다짐해야겠다. 후후훗!
  
   아 매주 주일에서 월요일로 넘어가는 이 새벽시간, 목자모임의 후유증에 이렇게 발설(發說)의
기쁨을 누리는 것!!
   즐거워즐거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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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공즐공^_^)/

카테고리 없음 2009. 10. 18. 01:00

오늘 뭐처럼 학원에서 모의고사 봤는데, 빵빠레!!
그래서 기분이 좋았는데다가 독서실에서 공부하는데 즐거웠다.
집에 가야하는 현실이 안타까울 정도?

이렇게 임용고시 공부하면서 즐거운 정도는 정말 오랜만인 것 같다.
그리고 내가 마냥 놀진 않았구나, 이런 확신이 들었다.
특수학교 교육과정 해설서를 읽는데 아주 그냥 쓔슈슈슈슝~ 밑줄 쫘악!! 즐거웠어:)
글구 공부하면서 '아, 이렇게 언어지도 하면 되겠다.'라며 이론을 실제로 적용하고자 하는 잠깐의 의지라 할지라도..
참 다행인지라~
이렇게만 남은 14일 공부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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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 속 깊은 그 곳

카테고리 없음 2009. 10. 15. 11:29


 

                 참회록
                                               
      
                                     윤동주




파란 녹이 낀 구리 거울 속에

내 얼굴이 남아 있는 것은
어느 왕조의 유뮬이기에
이다지도 욕될까.

나는 나의 참회의 글을 한 줄에 줄이자.
ㅡ만 이십 사 년 일 개월을
무슨 기쁨을 바라 살아 왔던가.

내일이나 모레나 그 어느 즐거운 날에
나는 또 한 줄의 참회록을 써야 한다.
ㅡ그 때 그 젊은 나이에
왜 그런 부끄런 고백을 했던가.

밤이면 밤마다 나의 거울을
손바닥으로 발바닥으로 닦아 보자.

그러면 어느 운석밑으로 홀로 걸어가는
슬픈 사람의
뒷모양이
거울 속에 나타나 온다.











 

인식하지도 못했던 죄가 내재해왔다는 걸 깨달았던 그 날 이후로 자꾸만 내 마음이 편치 않았다. 
친구의 앞에서 그렇게 내 죄를 고백하던 그 날, 귀가하는 그 밤에 저 시가 문뜩 떠올랐다.
시를 검색해보니, 무릎탁!! 윤동주 시인님과 찌찌뽕이라고 해야할까 'O');


우리모두는 우리를 둘러싼 환경과 사건에 대해서
'불행한 일이 일어나는 건 그 사람 때문이야.'
'저 사람 때문에 내 맘이 심란해. 왜 내 인생에 뛰어들어서 날 힘들하는데?'와 같이
내 감정과 나를 둘러싼 사건의 원인은 그렇게 나를 둘러싼 사람을 탓하고,
하나님의 뜻을 운운하며 불평하는 마음이 가득하기 쉽상이다.
내가 많이 그래왔던 것 같다.


그러나 섬광처럼 번쩍이며 깨달음이 내 머리를 스쳤을 때, 모든 일의 원인은 너도 아닌 나도 아니다.
자꾸 내 마음을 솔직하게 역추적 하다보니 나의 죄된 본성 때문이었다.

깨닫고 난 후에 나는 얼마나도 두려워했는가?
예레미아 말씀을 읽으면서 하나님을 진노케 하는 것이 인간의 죄임을 지난 달부터 묵상했다.
그렇게 묵상했는데, 어떻게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는가?


정말 위험한 것은
머리 속에서는 천둥이 치고 폭풍이 몰아치는 두려움과 죄를 이해하는 것보다
매우 더디게 움직이 심장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진실로 찢어지는 심정으로 회개하고 있는지,
치열하게 몸부림치기 보다는 어쩔 수 없는 본성이라며 그저 그렇게 살고 싶어하는지..

어쩌면 이 곳에 끄적이며 부끄러운 고백을 하는 것이 지금으로써는 가장 최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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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Ja! 더 나은 내일을 위하여

카테고리 없음 2009. 10. 2. 14:40
늘 내 마음은 '안철수 교수님처럼 또는 그들처럼 살아야지.'이다.

'영혼을 불어넣는 사람'이라는 블로그 카테고리의 이름도 그 분의 아이디어로부터 온 것.

그 분이 많은 이들에게 그러하셨듯이 나의 영혼으로 인해 타인의 영혼이 변화될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고싶은 마음이 컸다.



5.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6.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정녕
기쁨으로 그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
(시편126편5~6절)


But 몸은 초원 위에 풀 뜯어먹고 편히 쉬고 있는 소와 같구나.ㅋㅋㅋ
            휴우, 왜 이리도 요새들어 게으르게 느릿하게 사는게 좋은지! 난 늘 이런식이야 -ㅁ-

어쩌면 아니 거의 100% 현실을 직면하고 싶지 않은 회피에서 우러나오는 행동이지요.

이렇게 나태하고 의지박약으로 살아가다간 큰 일 날 것 같다. 아빠가 오늘 나의 이런 태만해진 내 모습을 지적하셔서
내가 내게 뻘쭘하고 미안했다. 어제보다 더 나은 게 없으니까, 진전이 없으니까.. 또 살짝 괴롭네.

더 열심히 해야하는 4학년에 부지런함보다는 왠지 귀차니즘이 더 늘어나고 있는 것 같다.

어제 새벽에는 12시 반에 잠들었다가 중간고사 공부 하려고 새벽 4시에 눈을 떴다.

눈을 뜨며 스치는 찬송이 하나 있었다. 엄마 차 안에서 잘 듣는 찬송가가 있는데
그것은 '거두리로다, 거두리로다, 기쁨으로 단을 거두리로다~♪'

내가 잠을 자며 꿨던 꿈이 있는데 디테일한 건 기억이 나진 않지만 막 깨어나기 전,
꿈 속에서 나는 논 속에서 모내기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꿈이었지만 모내기 정말 힘들었다.ㅠ_ㅠ
그래서 힘들다고 투덜투덜, 투정부리며 모를 논에 내 던지기까지 했었다.kkkkkk
찌뿌둥한 몸을 일으키며 깨어나긴 했는데-
'아, 하나님 파파! 부지런한 농부처럼 살라고 하시는건가요?'
막 머리 속을 스치는 것은 위에서 언급한 찬송가와 함께 눈물로 씨를 뿌려 기쁨으로 단을 거두자.
이걸 내게 하나님이 알려주신 것 같다.

어제 공부했던 '유아특수교육기관 운영 및 관리' 중간고사 공부는 너무 지겨웠다.
사실, 시험공부 잘해서 좋은 성적을 얻는 것이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요, 최선이었는데..
학교에선 열심히 하고, 집에 오니 10시. 그냥 엄마랑 이야기하고 싶고 노닥노닥 거리고 싶었다.
그렇게 집에서 꼼지락 꼼지락 거리다가 잠든 건데... 이런 깨달음 주셨나보다 :-D
앗, 그런데 말씀에서의 눈물의 '씨'라는 것은 영혼을 위한 기도인 것인가?-_-)a 모르겠넹.


하루는 겉잡을 수 없이 빨리 지나가고,
특별한 것 하나 없어서 무료하고 지루한 내 일상에 삐뽀삐뽀 경고음이 울리고 있다.

삶이란 것이 선택의 연속이란 말이 있다. 
그렇다. 심지어 지하철을 탈지 버스를 탈지 이런 것도 사소한 것도 선택하는 우리의 일상 가운데
'나는 어떤 선택을 하며 살아가는가?' 이 질문과 그 선택이 참 중요하다는 걸 요새 느낀다.
내년이면 25살인데, 괜히 20대 중반에 들어서서 그런걸까?
하루를 돌이켜보며 내 모습에 괜히 걱정도 좀 되기도 하고, 긴장이 된다.
내일은 오늘보다 더 나은 내가 되어있기를.


추석 연휴의 첫 날인데, 스터디 숙제와 과제가 넘흐 귀찮다.
이 스터디 숙제와 과제는 모두 한 교수님으로부터 나온 것.
천안의 N대학교의 B교수님이 과제를 주셨다. 정말 밉상 그녀 kkkkkk
과제도 꼭 영상 보고 쓰는 거다.  
하나는 '병원 24시' 영상 2개, 외국 다큐멘터리 1개 (-_-);
지금 임용고시 공부로 교육과정 엄청 열심히 봐야할 시기인데-
청각장애아교육 과목 과제와 교수님 스타일 때문에 너무 신경 쓰이는게 많다.
에효, 잘 해야징. 퐈퐈퐈퐈이팅 ^O^


또 결론은 퐈퐈퐈퐈이팅이구나.
하하하, 3번의 일기란 이런 것인가? kkk
나도 5번 같은 글쓰기 하고 싶다 이거야 kkk
부러워, 5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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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 아이를 만난다는 것

카테고리 없음 2009. 9. 14. 20:53


가끔 내 감정과 행동의 근원을 알고 싶을 때가 많다.
'나는 왜 이러지?'라는 질문과 함께 시간을 달리는 소녀의 마코토처럼 과거로 돌아가고자 애쓴다.
항상 쉽게 과거를 떠올리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집중을 하다보면 과거를 떠올리게 되는데..
과거 속에서 어른 아이를 만날 때마다 불편한 마음이든다.
그건 '애'가 애답지 못하고 '어른'인 것마냥 행동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른'인 것마냥 하는 행동들을 또 어른들은 반가워하신다.
'애어른', 초등학교 때 어른들로부터 진짜 마니 듣고 살았다.
이게 좋은 줄 알고, 난 꽤 괜찮은 아이인가보다 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윤지니, 너 무지 애썼구나.'라는 마음에 뭔가 할 말을 잃는다.
나를 바라봤던 어른들의 눈빛이 기억나는데, 그 기억 역시 어른아이를 만나는 것 만큼이나 반갑지 않다.


최근에 또 외할머니가 그리워서 눈물이 글썽글썽..
가슴에 깊게 새겨진 그러한 순간이 있다. 그 순간을 떠올리며 시간을 자꾸 거슬러 올라가다보니
어른 아이를 또 만났다.
내가 왜 외할머니를 그토록 그리워하는지 알게되었다. 그렇게 또 나는 눈물이 펑펑..ㅠ_ㅠ


가슴에 깊게 새겨진 순간이라 함은 외할머니와 함께 공원에서 함께 보낸 해질 무렵의 순간이다.
몇살인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11살 때로 추측이 되는데,
가을날에 어느 누구와도 동행하지 않고, 풍납동 우리집에서 올림픽공원으로 나 혼자서 외할머니를 모시고 다녀온 것이다.
그런데 외할머니와의 동행은 엄마가 나에게 시킨 것도 아니고 할머니가 나에게 부탁하신 것도 아닌..
나의 즉흥적인 판단이었다.

외할머니는 자주 우리 집에 내려오셨다고 한다.
그리고 나는 외할머니가 무척 좋았다. 외할머니랑 있을 때 웃음이 늘 있었던 것 같다.
뭐랄까 .. 존재만으로도 든든함이랄까? 할머니의 전남 사투리가 너무나도 유쾌한? 그런거 때문에^^

외할머니가 다시 시골로 내려가신다 하시면 엄마랑 이모는 밭이 뭐가 중요하냐며 서울에 더 계시라고 하셨는데,
그 때마다 할머니 대답은 한결 같았다. '이 곳이 이제 답답하다고..'
마당이 비좁은 그 주택가가 할머니에겐 당연히 답답하셨겠지..
나는 할머니가 영광 할머니 댁으로 다시 가시는게 싫었던 것 같다.
할머니의 답답함을 해소시켜드리고 싶은 마음에 생각한 장소는 엄마랑 자주 갔었던 올림픽 공원이었다.
지금 생각해도 꽤 먼거리이고, 어렸을 때도 멀다고 느껴져서 
"할머니 공원 가실래요? 집에서 공원까지 멀텐데 괜찮아?"라고 여쭤봤더니 괜찮으시다며
할머니는 옷을 단정히 차려입으시고 나를 믿고 동행하셨다.
그런데 신기한 건 할머니와 함께 가면서 전혀 멀지 않게 느꼈다는 것이다.
또 할머니는 공원의 가을을 반가워하셨고 좋아하셨다.
그 때 할머니랑 몽촌토성에서 오래된 은행나무, 서쪽으로 기울여지는 해와 붉은 노을을 보면서 감탄했었다.
그리고 할머니의 만족하신 표정, 뒷짐지신 옆모습까지도 선명하다.
그 날 저녁에 엄마는 할머니와 함께한 외출에 놀라셨다.
할머니의 입은 귀에 걸리셨고^^
이 날 이후로 할머니와 나는 서로에게 더욱 각별해진 것 같다.
이 추억은 훗날 고1 미술시간에, 내 그림의 소재가 되기도 했다.

올림픽 공원에서 혼자 걷게 되면 꼭 몽촌토성을 간다. 그 곳에 서서 할머니를 떠올리며 주변을 살펴보게 된다.
언젠가 그 은행나무를 보며 마음이 짠했었다.
할머니와 함께 봤었던 그 은행나무의 모습은 없고, 힘이 없어서 가지를 지탱해주는 모습만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너만큼은 오래오래 푸르렀으면 좋겠는데..'

작년 여름에 나 혼자서 영광에 다녀왔었다. 외할머니 장례식 이후로 처음 내려간 나의 휴가였다.
그렇게 며칠을 쉬고 영광에서 서울로 올라오는 버스에서 30분동안 조용히 눈물을 쏟았었다.  
내 눈물의 이유는 막내이모랑 헤어지는 아쉬움도 있었으나, 가장 큰 이유는 할머니의 부재였다.
우리 막내이모를 비롯한 가족들은 각자 자신의 자리에서 열심히 살고 있지만
정작 외할머니가 계시질 않아서 가장 슬펐고, 그리움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삼촌이 할머니가 사시던 집을 개조하셔서, 예쁜 정원이 갖추어진 세콤이 관리하는 좋은 집으로 만드셨지만..
할머니랑 함께했던 여름엔 덥고, 겨울엔 포근했던 그 집이 없었다.
개떡을 만들어주셨던 그 부엌도 없었다.
올라오는 길에 어찌나 그것이 서럽던지..

공원의 은행나무와 변해버린 외가댁 때문에 속상했던 마음은
어쩌면 흘러가는 시간 앞에서 어떠한 것도 영원히 고정시킬수 없는 내 무력감 때문인 것 같았다.
외할머니가 뻐꾸기가 울던 그 봄 날, 내 생일에 이 세상을 갑자기 떠나신 것..
모시 옷을 입으신 당신을 본 것.. 하얀 가루가 된 할머니를 그 산에 뿌려드린 것..
눈이 뜨겁고 목이 메인다.

더욱 마음이 아픈 건..
초등학생이었던 내가 사랑하는 어르신을 내 옆에 두고자, 그 분의 마음을 많이 헤아린 어른 아이의 마음과 노력을
얼마전에
느꼈기 때문이다. 그리고 당신을 천국에서 볼 수 없기에.. 저는 너무 슬픕니다 ㅠㅠ
할머니 피부결도 기억하는 저는 당신이 보고싶어요, 아주 많이. 너무 그리워서 눈물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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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 모든 짐을 내게

카테고리 없음 2009. 9. 13. 02:41

선택의 갈림길
목자목녀수련회가 있었다. 원래, 학원 가고 싶었는데.. 자꾸만 박은조 목사님의 강의가 끌렸다.
박은조 목사님... 아프간 피랍사건으로 인해서 언론의 칼자루와 한국인들의 기독교에 대한 반감이 극에 달했던 2년전에
그 중심에 계셨던 분당샘물교회 담임목사님이셔서 그런지 가까운 곳에서 뵙고, 강의를 듣고 싶었다.
그렇지만 이정도의 욕구는 수련회 참석여부의 중요한 요인이 되지 못하였다. 
그래서 어떤 분인지 궁금하여 검색했다. 검색한 나의 표정은 'ㅁ');;
참 대단하신 분인데, 너무 어이없는 '안티'들과 공격성 글들을 보고 마음이 아팠다.
오히려 안티와 그 분에 대한 공격성은 나의 마음을 수련회로 이끌어주었다.
행여 누군가가 그 목사님에 대해서 또는 한국의 선교에 대해서 오해를 하고 있거나 비난을 하면 그냥 우물쭈물 있고 싶지 않아서였다. 또 내가 이 곳에 갔을 때 내게 주실 은혜가 더욱 기대되었다.
그래, 인강신청하여 듣는 거 괴롭겠지만ㅜ_ㅜㅋㅋㅋㅋㅋㅋ
이 분의 설교를 '안'듣는 것은 큰 후회로 남을 수도 있으니, 수련회에 참석하자.. :D



진리가 나를 자유케 해주심에 깊은 감사*
나는 글을 쓰는 이 순간에 얼마나 큰 감사와 보이지 않는 미래에 대한 기대의 마음이 흘러넘치는지..
그렇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고 말씀하셨던 예수님의 말씀대로, 나는 참 자유롭다! 호호호호

내가 자유로운 그 이유, 그 분이 나의 짐을 짊어주시기 때문이다.
'성공' 나에겐 참 절실한 단어라고 생각해왔다. 
내가 만든 완벽한 시나리오 때문이다. 그래서 성공이 간절했다. 공부 못한다고 날 쥐어박고 억눌렀던 것도 넘 싫었다.
임용고시 Pass-교육공무원(정규직)-휴직-미국유학, ← 진짜 생각만으로도 완벽하다. 그래서 나는 아둥바둥거렸지..kkk
하지만 2주전, 지인을 통해서 이 것은 정말 시나리오일 뿐..
휴직으로 유학간다는 것은 말처럼 쉽지 않고, 어렵다는게 현실이다. 이 이야기를 듣고 띠용했다.
그동안 투자한 돈과 시간, 내 감정적 소모. 어쩔?kkkkkkkkkkkk
그러니까 나의 오류는 나는 미국가려면 비행기를 타야하는데 자꾸만 서울과 경기도에 가는 자동차를 끼웃거린 것이다.
기뮨진, 비행기가 빠르냐.. 자동차가 빠르냐..hhhh
그르타.. 돈은 내가 버는 것이니까 어떻게 해서든 성공해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하겠다고 나 혼자 아둥바둥.. 
            (↑ 이 문장 자체만 봐도 뭔가 앞뒤가 안 맞다)
그래서 나는 유학에 대해서 심각하게 고민해보았다. 현실적으로 맞는 것일까, 또 내 욕심은 아닐까.. 의심이 시작되었다.
이러던 참에 나의 짐을 짊어주시겠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보았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자 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맘이 쉼을 얻으리라.(마11:28-30)

예전엔 예수님의 멍에가 참 부담스럽다고 고백한 적이 있는데..
어느새 내가 그 멍에를 메고 가는 자리에 서있다.
그러나 나는 나의 짐, 즉 '돈'이라는 짐을 내려놓지 않아서 그동안 많은 시험들이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예수님이 주시는 그 쉼을 제대로 누려보지 못한 것 같다.
누리지 않았다는 게 아니라 단기간으로 끝나거나 피부로만 느꼈을 뿐.. 뼛속깊이 느끼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 덕에 울Passion아그들이 당연히 받아야 하는 사랑도.. 그 사랑 주는 거.. 내가 뭐 잘났다고..
너무 당연한 건데 말이다. 그저 어린애처럼 책망받을 것이 무서우니까.. 내게 맡기신 '일'이니까 최선을 다했다. 
말씀에 길이 있는 것도 모르니, 예수님이 짐을 내려놓으라고 내가 져주겠다고 하신 이 말씀을 알면서도..
정작 내 삶에 적용하지 못하고 바보처럼 땀만 삐질삐질 흘렸다. 'ㅁ');;;
이 말씀을 듣고나니 마음도 머리도 한결 가벼워진 것 같다.
하나님이 내게 더 자유롭게 꿈을 꾸라고 하셨기 때문이다.


영혼구원, 내게 절실한 단어
"영혼구원을 위해 도전하는 자들을 통해 하나님의 땅과 하늘의 권세가 나타납니다."
가장 가슴에 남고 도전이 되는 박은조 목사님의 말씀이다.
성공과 몰입, 내겐 참 절실했는데.. 이 말씀을 듣고나서 '영혼구원'이 절실한 단어로 바뀌었다.
내가 영혼구원을 위해 힘썼을 때, 하나님 분명 나를 통해 기적같은 일들을 이루실 거라 믿는다.

사실 장애영아 교육을 미국에 가서 공부하고 싶은 이유는..
미국에서 좋은거 많이 보고 배우고 한국에 와서 내가 만날 부모님들에게 많은 위로가 되고 예수님을 전하고 싶어서다.
유학을 다녀오지 않아도, 어느 현장에 있건 간에 이건 매우 중요한 나의 Mission.
그러나 영아교육을 강조하는 것은 영아라는 시기와 부모라는 존재의 중요성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아직 Care수준의 교육만 이루어지고 있어서, 나는 Care이상의 지원과 섬김을 하고 싶기에..포기하고 싶지않다.
(그런데 두렵다. 노력하지 않을까봐..;; 노력해야 할텐데..)
이건 올해들어서 더욱 구체화된 꿈인데, 이 꿈을 기쁘게 여기실거라고 오늘 확신했다.
그래서 앞으로도 현실과 사람을 뛰어넘어 자유롭게 꿈을 꿀 것이다.
무한한 상상력은 하나님이 어릴 때부터 내게 주신 달란트니까. 쿠하하하하하!

당신이 원하시는 영혼구원이 나를 통해 이루어질 줄 믿습니다. Am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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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꿈을 살다'

카테고리 없음 2009. 7. 3. 21:20

새로운 시작

지인 몇몇 분께서 티스토리를 하시는 덕분에 이 곳을 알게 되었다.
아기자기한 미니홈피가 살짝 지루해지고, 그 곳 다이어리, 혹은 게시판에서 '글을 쓸까 말까.'하는 고민을 많이 하였는데
역시 나를 아는 분들이 없어서 그런지 몰라도 글이 술술 써져서 너무 좋다.
미니홈피에 태그, 그런거 하지 않았었는데.. 워낙 일촌들이 많아서 음악만 바꿔도 업데이트 되었다고 클릭하는 일촌이 있고,
나도 그런 일촌이기에 나를 조금만 보여주고 싶은 맘이 가득했다. 
물론 좋은 일은 되도록 친구들과 함께 나누고 싶어서 빼곡히 적었었는데.. 
잠자리에 엎드려 노트에 글쓰기를 하려고 노력했지만 역시 피곤한 날엔 안하면 끝이다.
그 날의 기록은 아무 것도 없다.
오늘 하루가 너무 감사하고, '김윤진'이란 사람의 감정 또한 너무 소중한데.. 
나의 관한 어떠한 기록없이 지나간다는 건 No! 정말 아니다. 

나중에 이 곳을 몇몇의 소수 혹은 다수와 나누게 될 지 모르겠지만..
글을 쓰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거침없는 글쓰기를 하고싶다.




새로운 공간, '꿈을 살다'

'꿈을 살다'
이 짧막한 문장은 너무 멋지다.
지금은 종영된 'TV, 책을 말하다'라는 프로그램에서 소개된 추천도서의 이름이 '꿈을 살다'였다.
사실 그 방송의 내용은 그닥 나에게 매력적이지 않았다. 그래서 어떤 내용이었는지 또렷하게 기억나질 않는다.
그러나 책 제목만큼은 너무 멋있었다. 세상에! 꿈을 살아갈 수 있다니..
어떤 꿈을 꾸었고 어떻게 살아가길래 그런 책이 나왔나 인터넷 교보문고에서 책에 관한 소개도 대충 읽고 구입했다.

책을 한 장 한 장 읽을수록.. 난 창조적 실천가들의 삶에서 열정을 보았고 두근거림을 느꼈다.
그들의 움직임에서 타인을 향한 사랑과 열정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렇다. 내가 생각한 꿈은 내가 남들보다 잘나서 잘살고 타인보다 우위에 사는 것이 꿈이고 성공이었는데,
이 책에 나오는 사람들은 절대 그렇지 않았다.
그들은 진정한 세계 곳곳의 창조적 실천가들이었다. 
그렇게 잘났는데도 불구하고 '나'만을 위해서 사는 것이 아니라
너와 내가 하나가 되어 함께 살아가는 꿈을 꾸고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들이었다.






사람에 대한 신뢰, 무엇보다 사람에 대한 '사랑'을 갖고있는 사람들이 만났을 때 통하는 무언가가 있나보다. 
뜻없는 열정이 아닌 뜻있는 열정을 지닌 창조적 실천가들! 
그들이 멋있고, 부럽다.. 
난 어떻게 이웃에 대한 꿈 그리고 그 꿈의 실현을 위한 어떤 열정을 품어야 하는걸까..
                        
                                                                                               2008.12.23 책에 적어놓은 메모* 




나도 그렇게 살아갔으면 좋겠다.
'사람'을 향한 끊임없는 애정 그리고 열정이 있었으면 좋겠다.
그렇게 세상과 소통하며, 내가 서있는 이 모국에서 어떻게 살아가고 어떻게 행동해야
내가 있는 곳에서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을지
고민하는 젊은 날을 보냈으면 좋겠다는 소망에서 블로그의 이름을 '꿈을 살다'라고 적었다.
나에게 과감하게 위로와 희망을 던지고 싶다.
"윤진, 너도 그들처럼 그렇게 살아갈 수 있어. 힘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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